많이 낡은 집들이 있어서 날씨라도 우중충하면 상당히 스산한 느낌마져 주는곳이지만, 올때마다 느낌은 매우 신선하다.
신하균이 살던집

개금동엔 이런 골목들이 정말 많다.

골목이 많다보니, 이런 반사경도 많다.

참 깔끔하신 성격의 소유자인듯

정겨움마져 들게 한다.

기차 기다리기 전에 가볍게 저녁은 던킨으로






























벌킨의 차량용 220v 충전시거잭과 함께했다. 
대략 6시간 - -;
양재 IC 가는길, 너무싫다. 이길..
모두가 꿈꾸는, 통제사가 꿈꾸는..
첫휴게소, 기흥휴게소
쉬면서 책자좀 보고
가는길에 장엄한 빛내림
통제사가 싸준 삶은 달걀과 물(통제사 많이 변했다)
충전 잘댄다. 카메라 배터리도 무지 잘된다. (정말 잘산듯)
길을 잘못 들었지만, 거의 다 왔다. 순천 톨게이트
강호만나 가볍게 한잔
강호 아는 형님 가게 '간지'
웬지 모르게 소맥 - -; 잎새주 맛없다 ㅜ
강호와 지역업소 사장들
여가 여수 최고의 번화가 '여서동' 술집거리
2차로 온 강호 아는 누님의 바
돌산대교(돌산공원) - 돌산대교 야경을 찍으려구 했는데 ㅜ
가을돌산도 풍경
향일암 올라가는길, 상당히 가파르다.
근처 식당에서 된장국에 아침밥, 반찬이 맛나다. 역시
향일암 가는길1 - 경사만 바도 어질
기껏 올라왔더니 이제 시작일뿐
바위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 정말 ..
ㅜㅜ 마지막이다. 
이것때문에 올라온 보람은 충분하다 기회가 되면 꼭 일출찍어보고 싶다. 
원효대사 수양하시던곳
향일암 관세음보살상
향일암(向日庵)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은 화엄사의 *말사(末寺)로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중생이 서원에 감응했다는 감응도,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가 있다.
*[명사]<불교> 본사(本寺)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 ≒속사(屬寺).
향일암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659년(의자왕 19)에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었다는 내용이 《여수군지》 및 《여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950년(광종 9)에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인 1713년(숙종 39)에 당시 돌산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仁默)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이라고 명명하였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昌枋)이 얹혀져 있으며 헛첨차를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주심포계이며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대웅전 안에는 1987년에 조성한 청동석가모니불과 관음·지장보살이 있다. 1988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와 금니(金泥)로 채색한 신중탱화, 1983년에 만든 소형 범종 등도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은 대웅전 뒤쪽으로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계이며 바람막이판이 달린 맞배지붕이다. 1991년에 조성한 관음보살상과 관음탱이 있고, 관음전 옆에는 석조관음보살입상과 동자상이 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일명 흔들바위는 경전을 펼쳐 놓은 듯한 형상인데, 이 바위를 한 번 흔들면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나단 샷
전등사를 감싸고 있는 삼랑산성
조나단 샷
양헌수장군 전승기념비 (내가 어렸을땐 양헌수 장군을 포수로 해웠던 기억이 있다 - -;;)
전등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을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 -;;)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전등사 초입에 자리잡은 전통찻집, 쌍화차 냄새가 진동한다. 
전등사 입구다. 
전등사현판을 보니 전등사 맞다. 
대웅보전(대웅전)
가장 오래된 사찰답게 고색이 창연하다. 

약사전(藥師殿)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대개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 약단지(무가주)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삼계인을 짓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모신다. 우리나라에는 이 전각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통도사 약사전, 송광사 약사전, 관룡사 약사전, 고운사 약사전 등이 남아 있다.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수염은 철사~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원래는 지장전인데 명부전으로 더많이 불린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지옥중생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협시인 도명존자 및 무독귀왕 이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시왕상(十王像)을 봉안하고 있어 명부전(冥府殿)이라 더 많이 불린다. 지옥시왕(地獄十王)은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사후세계의 지배자인 야마왕이 불교에 들어와 지옥을 다스리는 염마왕이 되었다. 그것이 중국의 도교 영향을 받아 10가지 지옥과 그곳의 왕을 설하는 시왕사상으로 발전하면서 오히려 시왕 중에 한 분으로 변모하였다. 시왕의 각 명호는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태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 등이다. 
해우소 앞에 달마조각
물맛은 수도물 맛~
조나단 샷!
삼랑산성
가을색도 완연
서커스 독
조나단과 독
집으로 가자 


































개요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닷물은 파도와 함께 동쪽 물길을 따라 중앙 공간으로 흘러들어와 서쪽 물길을 통해 빠져 나간다. 바닷물이 물길을 따라 중앙으로 진입할 때 파도가 소멸되기 때문에 중앙의 물은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잔잔하며, 물 높이는 중앙의 큰 바위를 살짝 덮을 정도를 항상 유지한다.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하여 그 동안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초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바위의 조직과 바위의 내부 및 수면하를 조사한 결과, 대왕암 내부 또는 아래에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하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연구 결과 문무왕의 시신은 이 능지탑에서 화장되어 대왕암 주변에 산골하고, 대왕암 주변 바위에서 절리된 큰 바위를 중앙의 빈 공터에 남북으로 안치시켜 장례를 지낸 형식적 절차를 가짐으로써 무덤(왕릉)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왕암의 네 방향으로 수로를 낸 것은 석가의 사리를 안치한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의 한 설화에,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가,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감은사의 동쪽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이곳은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고 한다.
대왕암은 일몰/일출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담에 오면 이견대를 한번 꼭 가봐야겠다. 
통제사와 대왕암
개요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통제사 2009/06/24 17:13 # M/D Reply
돼지국밥 먹고싶다
통제사오빠 2009/06/25 12:26 # M/D Reply
대지 냄새가 좀 나서 싫어할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