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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것들' 과 '친절한 금자씨' 촬영지로 유명한 개금동.
많이 낡은 집들이 있어서 날씨라도 우중충하면 상당히 스산한 느낌마져 주는곳이지만, 올때마다 느낌은 매우 신선하다.

신하균이 살던집


개금동엔 이런 골목들이 정말 많다.


골목이 많다보니, 이런 반사경도 많다.


참 깔끔하신 성격의 소유자인듯


정겨움마져 들게 한다.


기차 기다리기 전에 가볍게 저녁은 던킨으로
2009/06/24 16:22 2009/06/24 16:22
여행과유적방문 2009/06/24 16:22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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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음식중에서 꼭 먹어봐야 할것이라면 돼지국밥이랑 밀면인데, 돼지국밥이야 어디든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면시장의 국밥골목이 제일 맛이 있는것 같다.

광안대교사진의 뼈져린 교훈을 안고 잠든 다음날, 8시 일어나서, 사실 너무 배가 고팠다.
항상 자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서면시장에서 국밥을 먹고



오전내내 서면 스타벅스에서 쫄쫄 굶어가며 일하다가, 가야동으로 향했다. 원래는 개금시장에 있는 개금밀면을 먹으러 간건데, 택시기사 아저씨의 추천으로 그옆동네 가야동의 밀면집으로 ...
지하철을 타면 동의대역 5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30m 근방에 있다.


네비로 찍고 온다면 이곳을 찍으면 되겠다.


damm it  너무 배가 고픈데.. 사람 정말 많다.


그냥 구경삼아 가야동 한바퀴를 돌았다. 가야성당인데, 주차장도 있고, 성당도 꽤 크다 담에 차를 가져올땐 여기다 주차하면 좋을듯.. 미사시간에 맞추면 더 좋을듯하다.


잠시 속죄의 시간을 갖고




찬은 딱 하나 무


국내산이라는데


이것이 부산 2대 밀면중 하나라는 가야밀면, 택시기사아저씨 말을 빌면, 부산 밀면의 가장 큰 특색은 육수의 맛인데 시간이 흘러서 그게 부산전역으로 다 전파가 되어서, 크게 의미는없다고 한다. 머..하지만 가야밀면은 워낙 상징적인 곳이라서 사람들이 계속 찾는다고 한다.


먹는시간은 딱 5분 ;;;
조금 걸어 개금동 백병원에서 핫초코한잔


2009/06/24 16:14 2009/06/24 16:14
여행과유적방문 2009/06/24 16:14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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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그 유명한 추암, 날씨관계로, 그 추암의 진면목을 제대로 못보았다.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추암해변가의 조박사


바람 무지불었다.


SLR클럽에 자주 올라오는 그곳이다.


갈매기


촛대바위옆에 바위위를 독점하고 있는 녀석


이녀석들도 클럽에서 자주보았던..


그 유명한 추암이지만, 날씨가 이러니 아무도 없다.


이녀석들만 분주하다.


여기 완전 포인트인데 ㅜ


씁쓸함까지 느껴진다.


옆으로 시원한 해변가가 펼쳐져 있다. 여름에 오면 참 좋을거 같다.


너무나도 유명해져 버린 추암 촛대바위


어검없이 패밀리 마트는 어디에도 다 있다.


교과서 프레임으로 한컷


2009/05/10 14:17 2009/05/10 14:17
여행과유적방문 2009/05/10 14:17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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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킨의 차량용 220v 충전시거잭과 함께했다.


대략 6시간 - -;


양재 IC 가는길, 너무싫다. 이길..


모두가 꿈꾸는, 통제사가 꿈꾸는..


첫휴게소, 기흥휴게소


쉬면서 책자좀 보고


가는길에 장엄한 빛내림


통제사가 싸준  삶은 달걀과 물(통제사 많이 변했다)


충전 잘댄다. 카메라 배터리도 무지 잘된다. (정말 잘산듯)


길을 잘못 들었지만, 거의 다 왔다. 순천 톨게이트


강호만나 가볍게 한잔


강호 아는 형님 가게 '간지'


웬지 모르게 소맥 - -; 잎새주 맛없다 ㅜ


강호와 지역업소 사장들


여가 여수 최고의 번화가 '여서동' 술집거리


2차로 온 강호 아는 누님의 바


돌산대교(돌산공원) - 돌산대교 야경을 찍으려구 했는데 ㅜ


가을돌산도 풍경


향일암 올라가는길, 상당히 가파르다.


근처 식당에서 된장국에 아침밥, 반찬이 맛나다. 역시


향일암 가는길1 - 경사만 바도 어질


기껏 올라왔더니 이제 시작일뿐


바위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 정말 ..


ㅜㅜ 마지막이다.


이것때문에 올라온 보람은 충분하다 기회가 되면 꼭 일출찍어보고 싶다.


원효대사 수양하시던곳


향일암 관세음보살상



향일암(向日庵)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은 화엄사의 *말사(末寺)로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중생이 서원에 감응했다는 감응도,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가 있다.
*[명사]<불교> 본사(本寺)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 ≒속사(屬寺).

향일암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659년(의자왕 19)에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었다는 내용이 《여수군지》 및 《여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950년(광종 9)에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인 1713년(숙종 39)에 당시 돌산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仁默)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이라고 명명하였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昌枋)이 얹혀져 있으며 헛첨차를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주심포계이며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대웅전 안에는 1987년에 조성한 청동석가모니불과 관음·지장보살이 있다. 1988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와 금니(金泥)로 채색한 신중탱화, 1983년에 만든 소형 범종 등도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은 대웅전 뒤쪽으로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계이며 바람막이판이 달린 맞배지붕이다. 1991년에 조성한 관음보살상과 관음탱이 있고, 관음전 옆에는 석조관음보살입상과 동자상이 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일명 흔들바위는 경전을 펼쳐 놓은 듯한 형상인데, 이 바위를 한 번 흔들면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8/12/07 14:40 2008/12/07 14:40
여행과유적방문 2008/12/07 14:40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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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샷


전등사를 감싸고 있는 삼랑산성


조나단 샷


양헌수장군 전승기념비 (내가 어렸을땐 양헌수 장군을 포수로 해웠던 기억이 있다 - -;;)


전등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을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 -;;)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전등사 초입에 자리잡은 전통찻집, 쌍화차 냄새가 진동한다.


전등사 입구다.


전등사현판을 보니 전등사 맞다.


대웅보전(대웅전)


가장 오래된 사찰답게 고색이 창연하다.




약사전(藥師殿)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대개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 약단지(무가주)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삼계인을 짓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모신다. 우리나라에는 이 전각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통도사 약사전, 송광사 약사전, 관룡사 약사전, 고운사 약사전 등이 남아 있다.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수염은 철사~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원래는 지장전인데 명부전으로 더많이 불린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지옥중생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협시인 도명존자 및 무독귀왕 이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시왕상(十王像)을 봉안하고 있어 명부전(冥府殿)이라 더 많이 불린다. 지옥시왕(地獄十王)은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사후세계의 지배자인 야마왕이 불교에 들어와 지옥을 다스리는 염마왕이 되었다. 그것이 중국의 도교 영향을 받아 10가지 지옥과 그곳의 왕을 설하는 시왕사상으로 발전하면서 오히려 시왕 중에 한 분으로 변모하였다. 시왕의 각 명호는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태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 등이다.



해우소 앞에 달마조각


물맛은 수도물 맛~


조나단 샷!


삼랑산성


가을색도 완연


서커스 독


조나단과 독


집으로 가자

2008/11/25 19:14 2008/11/25 19:14
여행과유적방문 2008/11/25 19:14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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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傳燈寺)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약 1600년 전에 아도화상이 최초로 창건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이다
사적 130호인 삼랑성으로 둘러쌓여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 178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179호인 약사전 393호인 범종, 유형문화재 26호인 앙헌수장군 승전비 등이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지가 있고 팔만대장경의 일부인 묘법연화경, 고려충렬왕비 정화공주가 부처님전에 불을 밝힌 옥등 1점, 총동수기 1점 약수등이 있으며, 전설이 있는 나녀상, 열지않는 은행나무, 울나무, 고령된 나무들이 많다.

너무 황급히 왔다가서 아쉬움이 남는다. 담에 한번 꼭 더 와보고 싶다.


머리카락이 너부 길어져 '천사조나단' 나오는 ** 닮아서 와니는 당분간 '천사조나단' 이라 불리게되었다.
진짜 천사는 아니다.
이날은 강화도의 멋진 낙조를 기대했으나, 날씨가 멋같아서 씁쓸이 졸음운전기사의 차를 목숨걸로 타고와야만 했다.

천사조나단


칠선주를 사고 허기를 달래기위해 들어간 칼국수집


꽁보리밥이 나왔다. 같이 나온 된장 맛이 압권이다.


강화도에서 파는 소주인데, 맛있을거 같아서 구입, 2천원


흰면과 녹색면이 반반 나왔다. 녹차인가 메밀인가 여튼..맛은 좋았다.


이 된장 비쥬얼은 안좋지만, 맛은 최고


난 하얀색이 좋더라, 고추장 풀어서 !!!


이것은 순무라는데, 조직감이 치밀한 느낌이 싫다. ㅜ


보기는 그닥이지만 국물맛이 끝내준다.


녹두전도~


전등사로 출발


가을색이 만연하다.


전등사 올라가는 길
2008/11/19 17:37 2008/11/19 17:37
여행과유적방문 2008/11/19 17:37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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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출발해서 해질무렵 송정에 도착했다.
송정은 혼자가던 같이가던 부산을 가면 꼭 가보는 곳이다.

도착


- -;;


송정에서 젤 좋은 급의 송정관광호텔 (시설은 그닥)


달이 떴다


송정과 통제사 SAL 50.4


웬지 낮설군


저속 셔터놀이


송정밤바다도 참 좋다.


몇안대는 통제사와 같이 찍은사진


송정오면 맨날 오는 횟집 with 재홍, 사진기피증환자 홍이


여기서 나오는 음식들은 모두 이쁘다. 눈도 즐겁고 맛도 있고,


배고프다


이것도 맛있다. (먼지는 모름)


아씨 ㅜ 배고픈데


멍게


좋은데이, 이름이 쫌 ㅜ (맛도 없다)


드뎌 본식등장, 특이한거이 회마다 무슨회다 표식이 있다. 센스쟁이 주인~


된장찌게인데 내가 참 좋아하는 스탈이다 붉은색의 두부숭숭넣은것


이런그릇은 대체 어디서구하는건가! 퍼즐처럼 해놓아서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


재홍이


재홍이 강추로 간 근처 항구(냄새가서 싫었다)


이제 집으로 ㅜ, 송정바다 참 깨끗하고 좋구나







2008/10/22 13:30 2008/10/22 13:30
여행과유적방문 2008/10/22 13:30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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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닷물은 파도와 함께 동쪽 물길을 따라 중앙 공간으로 흘러들어와 서쪽 물길을 통해 빠져 나간다. 바닷물이 물길을 따라 중앙으로 진입할 때 파도가 소멸되기 때문에 중앙의 물은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잔잔하며, 물 높이는 중앙의 큰 바위를 살짝 덮을 정도를 항상 유지한다.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하여 그 동안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초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바위의 조직과 바위의 내부 및 수면하를 조사한 결과, 대왕암 내부 또는 아래에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하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연구 결과 문무왕의 시신은 이 능지탑에서 화장되어 대왕암 주변에 산골하고, 대왕암 주변 바위에서 절리된 큰 바위를 중앙의 빈 공터에 남북으로 안치시켜 장례를 지낸 형식적 절차를 가짐으로써 무덤(왕릉)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왕암의 네 방향으로 수로를 낸 것은 석가의 사리를 안치한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의 한 설화에,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가,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감은사의 동쪽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이곳은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고 한다.


대왕암은 일몰/일출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담에 오면 이견대를 한번 꼭 가봐야겠다.



통제사와 대왕암


2008/10/22 13:01 2008/10/22 13:01
여행과유적방문 2008/10/22 13:01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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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2008/10/22 12:56 2008/10/22 12:56
여행과유적방문 2008/10/22 12:56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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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 탑지는 낭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건조물로 높이는 4.49m 이다. 능지탑지, 능시탑 또는 연화탑이라고도 부른다.
무너진것을 다시 쌓을 때, 원형을 알 수 없어 2단만 쌓고 나머지 돌들은 옆에 모아 두었다.
이 탑지는 문무대왕의 시신 화장터로 추정되며, 발굴할 때, 굴방에서 큼직한 소조불상파편이 나왔으므로 탑묘였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1979년 기단부를 복원하고 상부를 추정하여 정리하였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십이지신상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쌓아 올렸던 5층탑으로 추정된다.



십이지신상




2008/10/22 12:50 2008/10/22 12:50
여행과유적방문 2008/10/22 12:50 by 서문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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